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니시게 모토노부 (문단 편집) === 주니치 시절 ===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40401184705811.jpg]] 2002~03년에는 등번호 7번을 달고 뛰었으나, 2004년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주전 포수의 등번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리 마사아키]]가 달았던 27번, 혹은 [[한신 타이거스]]의 [[타부치 코이치]]가 부착했던 22번이라는 오치아이 감독의 지론에 의해 등번호를 27번으로 변경했다. 2002년에는 타율이 .215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홈런 면에서는 커리어하이인 24홈런을 쳤고, 2003~2004년에는 .260대의 타율에 18홈런, OPS 7할대 후반 ~ 8할대 초반을 넘나들었다. 공수에서 활약하며 2004년 오치아이 정권 1년차에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고, 그 해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는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고 본선의 미국전에서 선발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이후 정규 경기인 7월 26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포수로서는 사상 4번째인 통산 2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타격에서의 노쇠화가 이 해부터 눈에 띄게 드러나 타율, 안타 갯수, 루타수, 도루 갯수는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에서 리그 최저를 기록했으나 8년 만에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07년 8월 8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야구 역대 47번째가 되는 통산 300개의 2루타를 달성했고, 8월 10일 요미우리전에서는 기록 경신중이었던 포수로서의 연속 수비 기회무실책 프로 야구 기록이 1708차례로 멈췄다. 여전히 타율, 득점, 안타 갯수, 3루타, 루타수, 도루 갯수에서는 규정 타석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리그 최저를 기록했지만 전년도에 이어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동료인 [[카와카미 겐신]]도 2년 연속으로 수상하고 있어 같은 팀의 동일 배터리에 의한 2년 연속 수상은 센트럴 리그에서 처음이었다. 2008년 6월에는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되었고 이적 후 처음으로 2군에서 경기 출전하였다. 또 2004년에는 부상당했던 허리 상태도 나빠졌고 다리가 저릴 정도의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요추의 추간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그 해 오프, 허리에 있는 뼈의 일부를 깎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2009년 시즌 개막 직후부터 오른쪽 장딴지 부상으로 인해 약 1개월 간 결장했고 7월 5일의 한신전에서는 포수로서 [[노무라 카츠야]]에게 계속되는 역대 2위인 통산 2328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9월 1일에는 개인 통산 200호 홈런과 함께 200개의 희생타를 달성했다(양쪽 모두를 달성한 것은 역대 3번째). 9월에는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인 4번째의 FA권을 취득했고 프로 21년차에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0할대(무실책)의 수비율을 달성하여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10년 이듬해 7월 28일, 포수로서는 [[노무라 카츠야]] 이후의 2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는데 이 기록은 프로 야구 역대 8번째였다. 타격 부진으로 인해 결장은 있었지만 시즌을 통해 등록이 말소되지 않았고 팀의 4년 만에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11년 6월 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의 5회 수비 도중 다카야마 히사시와의 크로스 플레이로 왼쪽 무릎 인대가 손상되어 약 2개월간 등록이 말소되었다. 다니시게가 팀을 비운 사이에 팀은 15승 1무 21패의 성적으로 부진하였지만 다니시게는 그 와중에 재활 훈련과 상반신을 이용한 근력 트레이닝에 임하여 7월 29일 1군으로 복귀한 이후 타율 3할 1리, 23타점을 기록하면서 타격면에서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9월 말에는 10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페넌트레이스 종반에 팀의 역전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8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는 프로 23년째이자 통산 2594경기째에 프로 입문 이후 처음으로 1루수로서 선발 출전을 했는데 1루수에 한정하지 않고 정규 시즌에서 포수 이외의 수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에서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는데 야쿠르트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무안타로 끝났다. 계속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무안타는 계속돼 11월 20일 7차전에서는 3회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시점에서 1989년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오이시 다이지로가 세운 이후 21타수 연속 무안타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2012년은 시즌 초반 정말 뜬금없이 4할타율의 맹타를 휘두르며 한때 리그 타격순위 단독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특히 2011년부터 소위 통일구라 명명된 저반발 공인구탓에 리그에서 3할타자들이 거의 멸종할 정도로 극심한 투고타저였던 시절인지라 다니시게의 4할타율은 더더욱 뜬금없게 느껴졌다. 전해 후반기의 기세도 있었던지라 나이 40대에 드디어 타격에 눈을 떴다는 식으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는가 싶었으나... 역시나 평균 회귀의 법칙처럼 시즌은 .228의 타율로 마무리(...). 이 해 4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는 홈런을 때려내 신인때부터 24년 연속 홈런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고 7월 26일의 한신전에서도 2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이 홈런에 의한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 2013년 10월 9일, 12년만의 B클래스로 시즌을 끝낸 주니치가 그를 차기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이로써 주니치 구단 사상으로는 59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프로야구계 전체로는 2006~2007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후루타 아츠야]] 이후 7년만에 '''선수 겸 감독'''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야마모토 마사]]의 입지는...~~[* 참고로 야마모토 마사가 다니시게 모토노부보다 5살 많다.] 하지만 2014년 주니치의 거듭되는 부진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4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4월 30일에는 3000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5월 4일, 한신전(고시엔)에서 27년 연속 홈런,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이 홈런은 구단 최고령 홈런이고, 감독 겸임 감독이 2년 연속으로 홈런을 친건 노무라 카츠야 이후 28년만, 센트럴리그로는 [[후지무라 후미오]] 이후 59년 만이다] 7월 28일에는 3018경기로 노무라 카츠야를 넘고 최다경기 출장 기록을 경신했다. 9월 26일, 친정팀 요코하마전에서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팀은 ~~[[아사오 타쿠야]]의 불질로~~지고 본인은 1타수 무안타. 2015 시즌을 끝으로 팀이 고액연봉을 받는 고참 선수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는 친정팀인 요코하마와의 원정경기로 치루었다. 경기 종료 후 양 구단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은퇴 세레머니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날 경기 자체는 주니치가 1-0으로 이기다가 9회말에 홈런 2개 얻어맞고 끝내기로 졌다. 감독으로서는 최악의 패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